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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D.P.를 처음 봤을 때, 이게 드라마인지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렸습니다. 군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장면 하나하나에서 “저거 실제로 있었던 일이잖아”라는 감각이 올라오는 걸 느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단순한 군대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보다 보니 이 작품이 건드리는 게 폭력 그 자체보다 그 폭력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군대폭력이 ‘관행’이 되는 순간
D.P.가 다른 군대 드라마와 다른 지점은, 가혹행위를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드라마 속 폭력은 특정 악인이 저지르는 게 아니라, 계급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반복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건 과장이 아닙니다. 특정 행동이 계속 용인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그 행동은 어느 순간 ‘원래 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걸 사회학에서는 제도화된 폭력(Institutionalized Violence)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제도화된 폭력이란, 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조직의 규범과 위계 구조 속에서 폭력이 정상적인 것처럼 작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D.P.는 바로 이 메커니즘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드라마입니다.
특히 드라마 속 탈영병(군무이탈자)들의 사연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군무이탈이란 법적으로는 허가 없이 부대를 이탈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D.P.는 그 이면에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탈영은 단순한 의무 회피가 아니라,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처럼 그려집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군 복무 중 인권침해 경험을 호소한 비율이 여전히 적지 않은 수준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수치가 나오는 이유는 사건이 많아서가 아니라, 신고조차 어려운 구조 때문입니다. 드라마는 바로 그 지점을 찌릅니다.
D.P.가 보여주는 군대폭력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계급 위계를 통해 폭력이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수직적 구조
-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학습된 폭력의 반복
- 외부 감시 없이 폐쇄된 공간에서 작동하는 자기 정화 불능 상태
- 피해 신고 시 오히려 불이익이 생기는 역전된 보상 체계
이 네 가지가 맞물리면, 폭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의 산물이 됩니다. 그때 느낀 건, 나쁜 사람이 없어도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이었습니다.
침묵문화와 구조적문제가 비극을 키운다
드라마에서 가장 답답했던 장면은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주변이 알면서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 장면들이었습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이건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조직 심리학에서는 이를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와 연결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방관자 효과란, 목격자의 수가 많을수록 오히려 개인이 개입할 책임감을 덜 느끼게 되는 심리 현상입니다. 군대처럼 위계가 명확한 조직에서는 이 효과가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상급자가 묵인하는 걸 보면, 하급자는 개입했다가 오히려 자신이 표적이 될까봐 침묵을 선택하게 됩니다.
D.P.가 그려내는 침묵 문화는 단순히 비겁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침묵은 생존 전략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냐고 답답했는데, 드라마를 따라가다 보면 그 침묵이 얼마나 합리적인 선택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씁쓸했습니다.
구조적 문제(Systemic Problem)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등장합니다. 구조적 문제란, 특정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제도와 조직 설계 자체가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는 상황을 말합니다. D.P.는 드라마 전체를 통해 이걸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간부가 바뀌어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도, 결국 같은 비극이 반복됩니다.
일부에서는 D.P.가 군 조직 전체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저도 그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변화하는 병영 문화도 있고, 긍정적인 경험을 한 분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극적 메시지 전달을 위해 어두운 사례에 집중했다는 비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공론화한 문제가 실재한다는 사실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국방부가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제도 개선보다 더 근본적인 건 침묵을 강요하는 문화 자체를 바꾸는 일입니다. 신고 창구를 만들어도 신고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그 창구는 장식에 불과합니다.
D.P.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결국 이 질문 때문입니다. “나쁜 건 사람인가, 구조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군대 밖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D.P.는 불편하지만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시는 걸 권합니다. 그게 이 작품이 바라는 반응이 아닐까 싶습니다.